문법책을 열 번 읽으면 영어회화가 된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런데 직접 해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금 소개할 방법은 Grammar in Use 한 권을 반복해서 읽는 것인데, 이게 단순해 보여도 실제로 영어 문장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게 해줬습니다.
문법책인데 왜 읽으라는 걸까
사실 저는 Grammar in Use라는 책 이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니까요. 근데 문법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5형식, 4형식 같은 문법 용어가 가득하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영상을 우연히 훑어보게 됐는데, 거기서 이 책을 열 번 읽으라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 Grammar in Use를 펼쳤을 때 느낀 첫 인상은 "어, 이건 내가 생각하던 문법책이 아니다"였습니다.
Grammar in Use는 문법 용어 설명 대신 예문 중심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여기서 예문 중심이란, 규칙을 머리로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로 쓰이는 문장을 반복해서 접하며 자연스럽게 패턴을 체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책을 보면 왼쪽 페이지에는 짧고 간결한 설명과 예문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연습 문제가 있고, 이런 구성이 Unit 1부터 113까지 이어집니다.
내용을 직접 써보니 이 책이 왜 회화에 효과적인지 금세 이해가 됐습니다. 예를 들어 might라는 단어, 뜻은 알아도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 몰랐습니다. "I might go"라는 문장을 예문으로 계속 접하다 보니, 그게 어떤 뉘앙스인지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be going to와 will의 차이처럼 막연하게만 알던 개념도, 반복된 예문을 통해 실제 사용 맥락이 잡혔습니다.
10번 읽는다는 게 실제로 어떤 경험인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1~3회독은 신기함이 버팀목이 됩니다. "아, 이 표현이 이렇게 쓰이는 거였구나" 하는 발견이 계속 나오거든요. 그런데 4회독부터는 지옥이 시작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5~6회독 구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책을 펼치면 "My name is Ana. I'm American. I'm from Chicago."같은 문장이 또 나옵니다. 이걸 보는 순간 머리를 감싸 쥐고 싶을 정도로 지겨웠습니다. '이걸 내가 왜 또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버텼던 방법은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카페에 혼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읽었습니다. 약속도 없고 갈 데도 없으니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기 싫어도 그냥 앉아서 펼쳤습니다. 이게 외부 환경을 이용해서 행동을 강제하는 방식인데, 생각보다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 건 7회독 무렵이었습니다. 암기를 한 것도 아닌데, 일상 생활에서 책 속의 문장들이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단어들이 줄줄 나열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회화책을 외우거나 미드 섀도잉을 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습니다.
반복 학습이 효과적인 이유, 그냥 믿어선 안 됩니다
이 방법이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반복 학습이 효과적인 이유는 체화(體化)에 있습니다. 체화란, 배운 내용이 머리속 지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상태, 즉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수준까지 익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포츠 선수가 같은 동작을 수천 번 반복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성인 외국어 습득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론이 나옵니다. 쉬운 문장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성인의 언어 습득에 효과적이라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연구재단). 쉬운 문장이어야 하고, 반복이 있어야 하며,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핵심입니다. Grammar in Use는 이 세 가지를 자연스럽게 충족시켜 주는 구조입니다.
공부법 연구에서도 반복 회독의 효과는 꾸준히 강조됩니다.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방식, 즉 다독(多讀)보다 반복 정독이 장기 기억 형성에 더 유리하다는 점은 학습과학(Learning Science)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여기서 학습과학이란, 인간이 어떻게 배우고 기억하는지를 심리학과 인지과학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이 공부법이 영어회화뿐 아니라 수학 문제집이든, 자격증 교재든 거의 모든 공부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분야에서든 성취도 높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느낍니다. 한 권을 최소 다섯 번, 많으면 열 번 이상 반복했다는 겁니다. 수학 문제집을 같은 문제집으로 열 번 풀었다는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지 않습니까. 공부는 결국 반복을 통해 체화되는 것이 가장 오래 가는 방법입니다.
책 선택과 활용 팁
Grammar in Use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헷갈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이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 빨간색 표지: 영국 영어 기준의 원본으로, 저자인 레이먼드 머피(Raymond Murphy)가 처음 출간한 버전입니다.
- 노란색 표지: 원본을 미국 영어 표현으로 편집한 버전입니다.
어떤 버전을 사도 공부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저처럼 미국 영어에 더 익숙하다면 노란색을, 영국 영어가 필요한 분이라면 빨간색을 선택하면 됩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오디오북 버전을 구입하시는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오디오북이란 음성 파일이 포함된 버전으로, 책에 수록된 QR코드나 코드를 통해 원어민 성우의 발음을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각 예문을 성우가 읽어주고 잠깐의 텀이 생기는데, 그 텀에 따라 소리 내어 읽으면 섀도잉(Shadowing) 효과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섀도잉이란 원어민의 발음을 바로 따라 말하면서 억양과 리듬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학습법을 말합니다. 이 방법을 점심시간 카페에서 활용했을 때 발음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올라가는 걸 느꼈습니다.
정리하면, Grammar in Use 학습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1~3회독: 예문의 패턴과 뉘앙스에 집중하며 신기함을 동력으로 삼는다.
- 4~6회독: 가장 힘든 구간. 환경을 활용해 억지로라도 앉아서 읽는다.
- 7~10회독: 암기 없이도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체화 단계.
영어회화를 잘하고 싶다면, 처음에는 고통스럽더라도 이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건 없습니다.
이 방법이 모두에게 쉽게 권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4~6회독 구간은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그 구간을 버텨낸 사람만이 7회독 이후에 오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문법책 한 권을 열 번 읽는다는 게 어렵게 들리겠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Grammar in Use 한 권, 끝까지 한번 버텨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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